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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의사의 이야기

<Resilience / grace and humanity awards>

추위가 매서운 미국 중서부 1월 어느 날, 나는 어느덧 시카고 도심 한복판의 대학병원에 와있었다. 미국 전공의 수련 지원이 목표인 나는 미국 의료를 몸소 겪고 부딪혀 보기 위해 실습 경험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사정때문에, 임상실습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상황에서, 정말 무작정 연락을 드려 운이 좋게 오게 된 것이다. 귀한 기회를 얻게 된 곳은 채영광 교수님이 계신 종양내과 연구실과 클리닉이다. 미 중서부에서 암치료로 명성이 높은 노스웨스턴 메모리얼 병원에 속한 곳으로 올슨(olson)병동에서 주로 진료가 이루어 진다. 봄을 맞이하기위해 무사히 버텨내야 하는 외부의 차가운 날씨만큼, 본인 내부의 암이라는 존재와 긴 시간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환자들과 의료진이 만나는 곳이다. 병원의 시설과 명성에 감탄해 마지 않으며, 멀뚱멀뚱 한주 두주 적응을 해가고 있던 차, 어느 날 외래에서 갑자기 교수님이 환자에게 상을 주신다고 한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교수님의 말에 흠칫 놀랐다. ‘아니 도대체 환자에게 무슨 상이지?’

생전 보지 못하던 상황을 영문도 모른 채 지켜보던 나는 엉겁결에 의료진과 함께 환자 상장수여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늘의 첫번째 수상자는 70대의 한 여성 할머니 폐암 환자이시다. 다행이 치료에 잘 반응하여 안정상태를 유지하며 꽤나 긴 기간 잘 버텨오고 계셨다. 간단한 문진과 신체검진과 그동안의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진료가 먼저 이루어 졌다. 겉으로 보인 환자분은 가냘픈 목소리와 선한 눈빛으로 매우 협조적인 분위기로 대답하시고, 처연한 태도로 꿋꿋하게 잘 버티고 계신 듯이 보였다. 환자분은 별달리 호소하시는 특이사항 없으셨으며, 무난하고 평이한 분위기로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또 몇 달 뒤 다음 추적관찰을 위한 방문이 예정될 환자분은 치료제 투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뒤 너댓명의 의료진들이 대기실에 들어와 격려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상장을 드리자 평정한듯 보이셨던 할머니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시며 감격해 마지않으셨다. 꿋꿋해 보이시던 할머니는 전 진료때와는 다르게 요즘 너무 힘들었다고, 격려가 너무 고맙다고 의료진의 돌아가며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마워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얼떨결에 속하게 된 나에게 문득 잔잔한 감동과 뿌듯함이 몰려왔다. 얼마나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는지 환자분의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에 전해지는 잔잔하고 따뜻한 울림들이 있었다. 환자분들은 겉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정말 힘겨운 육체적 정신적 부담감을 앉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곰곰이 첫번째 상황을 곱씹던 나는 두번째 환자분의 수상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역시 긴 투병생활을 해오신 70대 할아버지 신사분이었다. 가족분들의 지지가 잘 되는 것 같은 인상이었으며, 병원에서도 유머러스한 태도를 잃지 않으시는 듯 보였다. 오늘 진료는 다행이 큰 재발과 악화 없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다행스럽고 무난한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잠시 뒤 상장 수여 이벤트를 하게 되었을 때 환자분은 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즐거워하시며 받으셨다. 역시나 농담을 한껏 던지시며, 의료진과 환자가 서로 친구가 된 것처럼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이러한 광경이 여기가 잠시나마 진료실이 아닌 것처럼 착각이 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암이라는 병과 투쟁 중에 항상 자신있고 당당하게 긴 시간을 오롯이 혼자만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혼자만 외로이 싸우고 있지 않음을 격려받고 추억으로 남겨 함께 항상 응원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병원에서의 작은 의례가 환자분들께는 두고두고 매우 큰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을 앉고서 헤쳐나갈 긴 시간 중에 짧지만 잠시나마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이 찐한 위로와 지지든 친구와 나누는 유머러스한 격려이던…

비록 의료진은 의료적인 업무만 수행하기도 항상 바쁘고 치이지만, 그 와중에도 각자 작은 수고를 삼삼오오 한데 모아 환자에게 큰 선물을 주게 된 그 가치는 너무나도 값진 것처럼 보였다. 구체적인 방식과 방법은 다르더라도 이런 작은 응원과 격려가 많은 곳에서 일어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병처럼 각자 삶에서 힘겹게 투쟁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면들이 있다.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모두 위로가 되는 신묘한 공명작용이 일어나는 경험이어서 더욱 뜻 깊다. 환자와 그 가족들 포함해 그 외 평범한 일상을 살아 사람에게도 그 공명이 더 크게 울려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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